석유왕국에서 문화왕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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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산유국이 관광과 문화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를 꿈꾸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의 첫 해외 별관 ‘루브르 아부다비’가 그 신호탄. 카타르가 신축한 아랍현대미술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행 중인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 등 중동 내 경쟁도 만만찮다. 중동의 ‘포스트 오일 시대’ 움직임을 추적해본다.   

글_손성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중동팀 전문연구원 

 


지난해 11월 8일 개관한 루브르 아부다비.

2014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으로 중동 산유국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 영향으로 중동 산유국이 집중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의 경제성장률은 급락했으며 재정 수지 악화, 외화자산 감소, 투자 위축 등과 같은 문제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걸프협력회의는 민간 및 비석유 부문 육성 정책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은 장기 국가 개혁 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하며 석유 중심 경제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도 각각 ‘두바이 산업전략 2030’, ‘새로운 쿠웨이트 2035’와 같은 장기 계획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석유 중심 경제의 변화 기류 
중동 산유국이 산업 다각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국제유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자국 경기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거시 정책 수단의 효과가 크지 않은 점, 실업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중동 산유국의 경제 구조에서 석유는 수출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 수입, GDP 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는 국제유가가 높을 때 외화 유입과 함께 경제가 상당한 호황을 누리지만 국제유가가 하락할 경우 경제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제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이 빈약해 중앙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더라도 그 파급 효과는 크지 않다. 이들 국가의 고용 구조를 살펴보면, 자국민 대부분은 양질의 공공 부문에 종사하고, 업무 강도 대비 임금 수준이 낮은 민간 부문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석유를 통한 수익을 국가가 독점한 뒤 국민에게 공공 부문 고용, 각종 보조금 등을 통해 재분배하는 경제구조에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서 인구증가율도 높아 더 이상 공공 부문에 자국민 고용을 늘리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민간 및 비석유 부문을 확대해야만 지금의 구조적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산업 다각화 정책은 인프라 개발과 제조업 육성에 중점을 두었다. 항만, 공항 등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값싼 원유를 토대로 석유화학 산업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산업화를 이루었고, 석유 자원을 통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 부문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원 및 자본 집약적인 석유화학 등의 산업은 고용 창출에 한계가 있다.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특성 탓에 제조업 육성 정책의 실효성과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 가능성도 적었다. 이에 서비스 부문 확대를 통해 민간 부문 비중과 일자리를 늘리고자 하였고, 그 일환으로 관광 및 문화예술 부문 육성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발표한 새로운 경제 비전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미술 박물관에서 바라본 전망.

아랍에미리트, 관광·문화예술에 집중 투자 
아랍에미리트(UAE)는 2000년대부터 두바이,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관광 부문을 미래 유망산업 중 하나로 지정하고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중동 내 최대 관광 도시 두바이는 7성급 호텔, 인공섬, 세계 최대 쇼핑몰, 실내 스키장 등의 물리적 관광 인프라와 함께 세계 최대 분수 및 불꽃 쇼, 쇼핑 시즌 도입 등 다양한 볼거리와 관광 콘텐츠도 마련하였다. 국영 기업인 에미레이트항공을 활용해 저렴한 항공료를 강점으로 두바이 공항을 주요 환승 공항으로 활용하도록 하면서 경유지 체류 형태의 단기 관광 코스도 증가하고 있다. 두바이 정부는 중동에서 가장 우수한 지하철을 운영하는 등 높은 수준의 교통 인프라로 역내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국제 전시회, 행사 등 MICE 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은 UAE의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부다비는 2004년 ‘사디야트 문화·관광특구(Saddiyat Island Cultural District)’ 건설을 통해 관광·휴양·레저·예술 중심지를 향한 야심을 드러냈다. 이곳에 2017년 11월 루브르 별관을 개관했고, 구겐하임 분관과 자이드 국립박물관, 해양박물관 등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UAE에는 최신 인프라와 아랍 전통문화가 공존하고 있어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로 여러 차례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우리나라 언론 및 방송을 통해서도 이국적이면서도 첨단 도시의 매력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그리고 UAE는 2020년으로 예정된 두바이 엑스포 관련 인프라에 7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역내 가장 우수한 관광 및 문화 중심지가 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루브르 아부다비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의 첫 해외 별관으로,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관광·문화예술 분야의 중동 내 경쟁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도 문화 및 관광 부문을 중심으로 산업 다각화를 이룩한 UAE를 벤치마킹하여 자국의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타르가 발표한 ‘카타르 비전 2030’에는 이슬람 전통을 바탕으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고, 세계 예술의 중심지를 목표로 문화 산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 일환으로 카타르 정부는 국립박물관, 아랍현대미술관, 이슬람 미술관 등을 설립하였다. 각종 경매에서 고가의 미술품을 사들이며 세계 미술계의 큰손으로도 떠올랐다. 특히 카타르의 셰이카 알 마야사(Sheikha Al-Mayassa) 공주는 1억5800만 파운드에 달하는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키시 등의 유명 작품을 구매하며 화제가 되었다. 또한 카타르 정부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11 AFC 아시안컵’ 등의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 바 있으며 ‘2022 FIFA 월드컵’ 개최지로도 선정되어 이를 위한 막대한 투자를 통해 역내 국제 행사 중심지를 노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이슬람 국가 중 가장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성지순례를 제외한 관광 및 문화 산업 개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 관광 비자조차 없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하고 대규모 관광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밝혀 역내 관광 중심지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홍해 지역에 200km에 이르는 관광특구를 조성하고 위락 시설과 교통 및 숙박, 에너지 인프라도 함께 구축하기로 하였다. 해당 지역 무비자 입국을 추진하고 비키니 차림과 음주도 허용하겠다는 등의 파격적인 내용도 포함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키디야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수도 리야드의 남서쪽으로 40km 떨어진 사막 지역에 식스 플래그 테마파크, 동물원, 워터파크 및 실내 스키장, 호텔 등을 건설할 계획이며 2035년 완공이 목표다. 이를 통해 역내 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를 꿈꾸는 것은 물론 자국 내 관광 및 휴양 시설 부족으로 매년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관광 수지 문제를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자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단순히 관광 및 문화 인프라만 조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건 이슬람으로 회귀하겠다는 목표로 여성에 대한 각종 규제도 완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여성의 운전 허용이다. 그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유일한 국가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8년 6월부로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다고 밝혔고 실제 6월 4일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운전면허가 발급되었다. 이어 축구장과 공연장의 여성 입장, 가족 공동 관람을 허용하고 여성의 신체 노출이 불가피한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보수적인 사우디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미술 박물관. 카타르는 아부다비와 중동의 문화예술 강국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중동의 ‘포스트 오일 시대’ 전망 
그동안은 중동 산유국의 산업 다각화 추진 정책 대비 이행 정도가 낮아 향후 전망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유가 시기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개혁, 민간 및 비석유 부문 비중 확대 등을 통해 석유 중심 경제구조를 탈피하겠다고 지속적으로 밝혔음에도 2000년대 이후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하면서 이들의 개선 정책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는 젊고 진취적인 지도자들의 강력한 추진 의지와 함께 일자리 창출 및 사회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증가하면서 관광 및 문화 산업을 포함해 서비스업 중심의 비석유 부문 개발 가능성이 다른 중동 산유국보다 높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관광 및 문화예술 부문에서는 UAE가 두각을 나타내었으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다양한 투자 계획을 발표 및 이행해가면서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몇 가지 리스크를 갖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다 종교지도자들과 왕실 세력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타르는 친이란 정책, 이슬람주의 세력 지원 등으로 걸프협력회의의 다른 국가와 외교 단절 상황에 놓여 있다. 국제유가가 다시 장기간 상승세를 보이면 지금의 정책 추진 의지를 약화시키는 변수로 작용할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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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