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의 결말: 영원(永遠)과 영면(永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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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2일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만났다. 과거의 ‘로켓맨(Rocket Man)’은 ‘존경할만한 사람(honorable)’이, ‘노망한 늙은이(dotard)’는 ‘대통령님(Mr.President)’이 되어 꼭 잡은 두 손을 12초간 놓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비핵화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벌써 궁금한 이 협상의 결말, 미국의 핵협상 사례를 통해 내다봤다. 

글_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북한은 지난 70년간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백두의 혈통’ 3대 세습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국가원수 자리와 함께 이어져 내려온 것이 바로 ‘핵(核)’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공분으로 이어졌지만, 김정은 위원장 집권 하 북한의 도발은 오히려 양적으로 증가했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고도화되어 왔다. 이어 UN 안보리 및 국가 단위의 대북제재, 미국의 CVID1, PVID2 압박과 리비아 모델, CVIG3를 유인으로 트럼프 모델 등이 거론된 이유다. 관련 검토를 이어가기 전 문제의 본질인 핵을 우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핵, 1945년 미국 최초 개발 
원자무기라고도 불리며 핵반응(핵융합 또는 분열)의 폭발 에너지를 통해 공격하는 핵은 인류 역사상 최강·최악의 무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교전국들의 개발 착수로 만들어졌는데, 특히 독일과 선취권을 경쟁하던 미국이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을 계기로 1945년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이 같은 해 일본 원자폭탄 투하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주원료로 하는 핵무기는 그 자체가 갖는 위력도 상당하지만 이후 화상, 피폭, 합병증 등도 치명적이다. 한 번의 투하로 수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위력에 미국도 놀랐는지, 소련(1949), 영국(1952), 프랑스(1960), 중국(1964)이 연이어 핵실험에 성공해 핵확산 조짐이 보이자 1970년 ‘핵무기의 비확산에 대한 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발효에 주도적으로 나섰다. 이것이 바로 약칭 핵무기비확산조약인 NPT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가지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미국 군축협회(Arms Control Association, ACA)와 군축관련 비영리 NGO인 핵위협방지구상(Nuclear Threat Initiative, NTI)은 이미 지구 상 9개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UN 상임이사국이자 핵 보유의 기득권을 공인받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에 더해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인 인도, 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것이다.4 흥미로운 것은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하지만 최근 미국의 핵협정 탈퇴로 논란의 당사자가 된 이란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군비 불평등과 같은 군사적 이유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한 여러 국가들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NPT와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등을 통한 국제사회의 감시와 압박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확산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 위험성 때문. 그 때문에 과거 핵을 보유했거나 시도했던 국가들에 대한 제재와 설득은 근거가 매우 타당해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모든 핵협상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물론 아니었다. 

비핵화의 좋은 예: 남아공·우크라이나 
북한의 비핵화 모델로 리비아 모델에 앞서 남아공 모델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리비아는 핵개발 초기 단계에서 비핵화 절차에 들어갔지만, 남아공은 실제 핵을 보유했다 포기한 최초의 국가였기 때문에 북한과 공통점이 많았다. 남아공은 핵융합 기술과 풍부한 우라늄을 보유해 핵무기 개발의 여건이 충분했고, 우라늄 공급원 자격으로 미국의 맨해튼 계획에도 참여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 개발에 들어가 1980년대 말에는 이미 6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그러나 소련 붕괴 이후 안보 환경이 개선되며 국제사회가 압박수위를 높여오자 1989년부터 비핵화 절차에 들어가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발적·신속한 비핵화를 1993년 달성했다.6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모범적인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보상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다만, 남아공은 핵 포기 이후 국제사회 제재가 해제되면서 안정적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실제 핵보유를 고집했던 1992년까지 GDP성장률 ­0.3%(1990), -1.0%(1991), -2.1%(1992)를 기록했지만 비핵화 원년인 1993년 1.2%를 시작으로 3.1%(1995), 2.6%(1997), 2.4%(1999), 4.2%(2000)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도 크게 성장했고, 미국, 영국 등과의 수출입활동 활성화로 대외무역 상황도 개선되었다. 특히 1995년 외자유치는 1993년과 비교해 무려 6,631% 성장했고, 2002년부터는 국제사회의 경제지원도 이뤄졌다.지금도 남아공은 아프리카 내 경제력이 가장 튼튼한 나라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는 비핵화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된다.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와 함께 1991년 구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자국 영토 내에 배치했던 핵무기를 그대로 계승해8 애초부터 핵보유 의지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는 러시아로 이전하고9 핵과학자와 기술 등은 1995년 과학기술센터를 설립해 관리했다.10 이 과정에서 철저한 경제보상과 안전보장을 받았는데, 실제 1994년 핵 포기 본격추진 시점부터 GDP는 조금씩 회복되었고 무역액도 1992년 이후부터 전반적인 증가세를 보여 2008년 무역총액이 1992년과 비교해 4,314% 성장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외자유치액은 5,247%라는 기록적인 증가추세를 보였다.11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몸으로 평화의 기호를 그리고 있는 반핵·반전운동가들

아쉬운 리비아·이란 모델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가장 많이 언급된 방식은 바로 리비아 모델이다. 그 핵심은 ‘선조치 후보상’인데, 완전한 핵 포기 선언과 검증 없이 경제적 보상은 없다는 것이 골자다. 1969년 집권한 카다피 정권이 핵무기 개발 및 구입에 들어갔으나 강력한 경제제재와 국제사회의 압박에, 기술부족까지 겹치며 결국 실패하고 2003년 포기를 선언했다.12 특히 심각한 경제난에서 유발되는 국민적 반감이 정권에 대한 내부 위협요인으로 작용해 부담이 컸다.13 북한의 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목이다. 2005년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에 이르렀지만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정에 대한 보장을 받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2011년 2월 튀니지 재스민 혁명과 함께 민주화 바람이 불어 카다피 정권의 독재에 대항하는 내전이 발생했고, 과거의 독재자는 내전 발발 8개월 만에 시민군에게 살해되는 비극을 맞았다. 비록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지만 비핵화 과정에 돌입한 이후 경제는 크게 개선되었다. 2001년과 200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던 GDP는 2003년 13.0%로 급반등했고, 제조업 분야도 2003년 전년대비 급성장했다. 무역액도 2003년 이후 급격히 증가해 비핵화가 가져온 경제적 변화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었다.14 
2002년 이란 내 우라늄 농축시설 존재 폭로로 시작된 이란 핵 위기는 2015년 미국 주도로 핵협상이 타결되며 안정세에 접어드는 듯 했다. 제재완화로 이듬해 가시적인 경제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으나15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수치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 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해 앞으로의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모델과 김정은 모델 
북한의 비핵화 해법을 두고 남아공 모델이니 리비아 모델이니 말이 많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가 북한에 완전히 맞을 수는 없다. 트럼프 모델이라는 새 해법이 언급되는 이유다. 우선 비핵화 협상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비핵화 이후 핵 포기국가의 경제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모델’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며, 비핵화절차와 방법에선 ‘남아공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체제 안전 보장에 있어서는 ‘리비아 모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고, 비핵화와 경제적 보상 및 체제안전 보장이 마침표를 찍기 위해선 중간에 위기를 맞은 ‘이란 모델’에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어느 한 가지 사례를 모델화하는 것은 애초에 옳지 않다. ‘트럼프 모델’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비핵화를 진행하고, 동시에 경제적 보상과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북한은 ‘신(新) 덩샤오핑’으로 부상한 김정은 위원장이 솔선수범 사회주의 경제의 체질개선과 개혁개방에 나서는 ‘김정은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이 두 모델이 모두 실현될 때 두 정상의 ‘악수’는 국제사회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각주

1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 Denuclearization):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2  PVID (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 Denuclearization):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3  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 안전 보장 
4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NPT 비가입국이다. 
5  KIEP (2010), 『핵 포기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개발 지원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 
6  “북한, 비핵화 즉각 보상 없는 ‘남아공 모델’에 열받았나,” 중앙일보(2018.5.9.) 
7, 8, 12, 14  KIEP (2010), 『핵 포기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개발 지원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 
9, 11, 13  KIEP (2007), 『오늘의 세계경제: 우크라이나 및 리비아 WMD해체 사례와 북핵문제 해결에의 시사점』 
10  “평화적인 핵포기의 모범사례: 우크라이나,” Radio Free Asia (2004.10.16.) 
15  The World Bank,  “Iran’s Economic Outlook ­ Apri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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