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태양이 지지 않는 영원한 백야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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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의 베니스로 불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이 도시를 두고 푸시킨은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 말했다. 18세기 초 서부 유럽의 문화와 국력에 매료된 표트르 1세는 유럽 쪽 국경에 인접한 발트해 연안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_이명석 문화비평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 구원 사원 

 

 

여름의 한가운데, 백야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몹시도 아름답다. 네바강을 따라가면 바로크, 네오 클래식, 이탈리안 스타일에 이르는 궁전, 성당, 맨션들이 눈을 홀린다. 운하 옆의 공원에는 꽃들 사이로 흥겨운 야외 공연이 펼쳐진다. 하지만 긴 겨울과 부족한 일조량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오랜 어둠과 추위를 이겨낼 예술의 빛을 갈구했다. 도시 곳곳에서 서 있는 세계적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 무용수의 조각상들이 그 결실이다. 

도시 중앙에서 마주 보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와 마린스키 극장은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의 산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서바토리는 1862년 루빈스타인에 의해 설립된 음악 학교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을 배출해낸 곳이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마린스키 극장은 안나 파블로바로 대표되는 러시아 발레의 산실이다. 파블로바가 창조해낸 <빈사의 백조>는 죽음 직전에 가냘픈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으로 이 도시 사람들이 사랑하는 비극적 서정을 잘 보여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성 이사악 성당 전경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정신을 문학으로 표현해냈다. 그는 1860년대 이 도시의 작은 쪽방에 틀어박혀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설을 써나갔다. 그가 그려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서유럽의 합리주의를 추구하면서도 러시아의 보수적 종교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 물질적인 곤궁함을 정신적인 가치로 메워보려고 애쓰는 이들이었다. 센나야 광장 근처의 골목은 그의 걸작 <죄와 벌>의 무대가 되는 곳이고, 블라디미르스카야 전철 역 인근에는 그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던 집이 박물관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서 푸시킨, 고골,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대문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는 어린 시절 이곳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러시아 혁명 이후 망명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어릴 적 살던 아파트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 구원 사원 전경

러시아 근현대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건물들 

고풍스러운 향취가 가득한 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한때 영광의 시대를 보냈을 것 같은 거창한 건물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카를로 로시가 디자인한 곳으로 테라스와 기둥의 조각이 일품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극장으로 연극 예술의 중심지가 되어왔는데, 고골리의 <검찰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등을 초연한 극장이기도 하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은 여행객이 접근하기 쉬운 대규모 극장으로 발레, 오페라, 음악회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거대한 아틀라스 동상이 호위하고 있는 겨울 궁전에는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이 찬미하는 예르미타시 국립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로마노프 왕조, 귀족, 기업가들이 열정적으로 모은 예술품이 모두 300만 점에 이른다.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러시아 문화관 등 6개 전시관에는 이집트의 미라에서부터 피카소의 걸작까지 빽빽이 채워져 있는데, 전시품들을 한 점당 1분씩만 봐도 총 관람 시간이 5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특히 인기 있는 곳은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유럽미술관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에르미타주 뮤지엄, 팰리스 브리지 호텔, 페테로고프 분수 등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조형물이 즐비하다.

 

러시아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고 싶다면, 19세기 후반 미하일롭스키 궁전을 개조한 러시아 미술관을 찾아가면 된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대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 특히 주목을 받는다. 그는 코사크 족, 볼가강의 인부 등 러시아 민초들의 생활상을 꼼꼼히 그려낸 작품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완숙기 이후에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정치적 문화적 영웅들의 초상화를 꾸준히 그려내 그의 작품을 보기만 해도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게 해준다. 현대 러시아 미술의 움직임이 궁금하다면, 에라르타 뮤지엄이나 스트리트 아트 뮤지엄을 찾아가 보기 바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로지르는 네바 강

 

1703년에 건설되어 3백 년에 이르는 역사를 이어온 이 도시는 그사이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었다. 1차 세계 대전 시기에 독일과 적대국으로 맞서자 독일식 어감이 나는 지명을 바꾸어페트로그라드가 되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혁명가 레닌의 이름을 따서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을 이어왔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수립되면서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오래된 이름을 되찾았다. 그만큼의 풍파가 이 도시를 괴롭혔지만, 이제는 오랜 역사의 유물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도약하는 도시가 되고자 움직이고 있다. 운하와 항구를 활용한 보트와 크루즈 투어 등 여행 산업에서도 변화들이 느껴지는데, 2018 6월에 펼쳐질 FIFA 월드컵은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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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