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아바나, 다시 시간을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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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에서 가장 뜨겁게 흥청대던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체 게바라의 얼굴과 시가 연기로 뒤덮인 채 신비의 이름으로만 존재했다. 그러다 불쑥 안개가 걷히자 사람들은 탄성을 토해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춰져 있던 나라, 쿠바가 이제 지구상 어느 곳보다 빠르게 시간을 달려가려 한다.  

글_이명석 문화비평가

 


 

“지금 저녁 먹으러 아바나에 가자는 거예요?” “어때서요? 쿠바에서도 우리와 똑같이 먹는답니다.” 
뮤지컬영화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뉴욕의 도박사 말론 브란도는 얌전한 선교사 진 시몬즈를 꾀어 비행기에 태운다. 그리고 아바나의 이국적인 나이트클럽에서 신나게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다. 영화가 나온 1955년에는 별스런 일이 아니었다. 아바나는 1920년대 금주법 시대부터 미국인들이 금단의 환락을 즐기러 가는 카리브 해의 별천지였다. 해변에는 고급 호텔과 댄스 클럽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냈고, 멋진 옷을 빼입은 남녀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뜨거운 밤을 달렸다. 그러나 1959년의 쿠바 혁명은 이 도시를 하룻밤에 서방 세계의 지도에서 없애버렸다.  
은둔의 쿠바는 여행자에게 금단의 과실이었다. 미국을 통해서는 들어갈 수 없으니 번거롭게 멕시코나 캐나다를 거치거나, 아예 파리에서 날아가야 했다. 폐쇄적인 나라이기에 출입국 절차도 까다로웠고, 낡은 비행기가 주는 공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쿠바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민간 항공기 취항 협정을 조인하자 미국 항공사들이 앞다퉈 노선 확보에 나섰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에 관계가 다시 경색되고는 있지만, 한번 열린 물꼬가 쉽게 닫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아바나의 공원과 카페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해변에서 모히토 한 잔가난 속의 행복
아바나의 북쪽 바닷가를 감싼 8km 가량의 해안도로, 말레콘은 쿠바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모히토를 마시며 음악과 춤을 즐긴다. 그들은 지독히도 가난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아냈다. 여행 사진 속의 올드 카를 떠올리며 택시에 올라탄 여행객들은 금세 환상의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낡아빠진 자동차는 에어컨도 없고, 언제 퍼져서 뙤약볕에 뒹굴지 알 수 없다. 멋있어서 타는 게 아니라, 그것밖에 없어서 타는 거다. 그런데 조금 뒤면 그 부족함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고개 돌려 구시가의 고층 건물들을 보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 아니 유적처럼 여겨진다. 
구시가의 상징인 캐피톨 빌딩을 지나면 크림색으로 은은히 자태를 뽐내는 파르타가스 담배 공장을 만날 수 있다. 184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아바나에서 가장 오래된 담배 공장인데 쿠바 담배 산업의 오랜 역사를 엿보게 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자살을 결심한 알 파치노가 청년에게 말한다. “몬테크리스토 넘버원을 사오게” 그것은 쿠바 산의 명품 시가 브랜드다. 담배는 이 가난한 나라를 먹여 살려온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시가보다 유명한 쿠바 산의 기호품이 있다. 모히토! 근처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헤밍웨이가 모히토를 즐겨 마셨다는 카페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를 찾을 수 있다.

 


쿠바를 대표하는 기호품, 모히토


거리 곳곳에서 즉흥 연주를 하는 쿠바 사람들

쿠바 음악의 상징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에서 음악은 공기와 같아요.” 쿠바인들은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한다. 공기와 같으니 어디든 있고, 공기와 같으니 없으면 살 수 없다. 아바나는 스페인 군대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은 황금을 모아 두었다가 본국으로 보내는 거점 도시였다. 반대로 서인도제도에서 실려 온 노예들이 이곳에 모였다가, 카리브 해의 여러 농장으로 실려 가곤 했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가 뒤섞인 춤과 음악의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맘보, 차차차, 살사 등이 모두 여기에서 태어났고, 삼바, 탱고도 따져보면 이곳의 아바네라(Habanera) 리듬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쿠바 음악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재즈와 같은 세련된 음악과 접목시키기도 했다. 그 결실의 하나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다.
미국의 뮤지션 라이 쿠더가 1990년대 중반, 소련의 붕괴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쿠바를 찾아왔다. 그는 194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쿠바 음악인들을 찾아내, 그들의 놀라운 음악을 재현한 뒤 바깥 세상에 알렸다. 세계인의 반응은 열광적이었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이후 많은 이들이 쿠바를 찾는 첫 번째 이유가 되었다. 지금은 왕년의 스타들이 거의 눈을 감았지만, 고급 호텔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딴 연주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말레콘의 길거리 악사, 레스토랑의 연주자들이 외국인들을 보면 황급히 인기곡인 ‘찬찬(ChanChan)’을 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바나 어디를 가든 체 게바라의 얼굴은 피할 수 없다. 그의 얼굴이 그려진 3페소 지폐가 관광객들에게 비싼 값에 팔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쿠바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그의 얼굴을 지워가고 있다. 그는 낭만적인 혁명의 아이콘이지만, 낭만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음을 수십 년 동안 깨달아왔기 때문이다. 쿠바인들은 이제 자신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환상을 지우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아바나의 청년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걸어간다. 누구든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수다를 떨 준비가 되어 있다. 그 놀라운 낙천주의가 현대의 세계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쿠바만큼 내일이 궁금한 나라를 찾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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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