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바다, 문명의 교차점에서 미래를 꿈꾸는 푸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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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은 숨차게 유럽을 달려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왔다. 유럽인은 이곳을 동양이 시작되는 관문이라 여겼다. 실크로드는 굽이굽이 길을 헤쳐와 이 도시에 이르렀다. 아시아인은 그곳에서 하나의 세계가 끝난다고 여겼다. 동과 서, 북과 남, 모든 문명이 이곳을 거쳐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갔다. 이스탄불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도시다.

글_이명석 문화비평가

 

 

 

해협 주변으로 커다란 컨테이너 선박과 작은 어선들이 활기차게 오가고, 그 사이로 여행자들을 실은 페리가 지나다닌다. 양쪽 연안에는 여러 시대의 역사적 건물이 많아, 요트를 타고 다니며 시간 여행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베벡 지구에 있는 고급 카페에서 보스포러스를 바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해협 남쪽으로 30km 정도 내려오면 갈라타 다리가 나온다. 북적대는 항구 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데, 고등어 샌드위치나 케밥을 파는 노점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갈라타 타워로 올라가면 이스탄불의 오랜 시가지들을 내려다볼 수 있고, 사방에서 경쟁하듯이 경전을 낭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리를 통해 골든 혼을 건너오면 이 도시를 대표하는 보석 같은 건축물이 가득하다.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인데, 원래는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인이었다. 1453년 메흐메드 2세가 이 도시를 점령한 뒤에 모스크로 바뀌었고, 1935년에는 다시 미술관으로 변신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름다운 돔 지붕과 모자이크 장식의 내부로 유명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비잔틴 양식의 건물이기도 하다. 건너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는 1616년 완성된 이슬람 사원이다. 내부를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해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들 지상의 두 거인 아래에는 예레바탄 사라이라는 지하 궁전이 자리 잡고 있다. 비잔티움 제국 시기에 거대한 저수조로 지어졌는데, 1963년 영화 <007 위기일발>의 무대로 등장한 뒤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은밀하고 이국적인 도시, 소설의 배경이 되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걸작 추리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프랑스와 이스탄불을 잇는 초호화 대륙 횡단 열차를 무대로 하고 있다. 당시 유럽의 귀족,  부유층, 지식인들은 이스탄불을 찾아가는 일을 일생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 도시가 바로 미지의 동쪽으로 들어서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특급의 종착역인 이스탄불의 시르케지 역이다. 마르마라해, 보스포러스 해, 골든 혼이 만나는 환상의 삼각지인 시르케지 부두에 있다. 당시 이 도시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어 철도회사에서 아예 ‘페라 팔라스 호텔’을 지었으며, 아가사 크리스티가 그곳 411호에 머무르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현재 역사 안에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레스토랑’이 있어 전설의 시대를 기억하게 한다.
이스탄불은 유럽 작가들에 의해 이국적이고 은밀한 장소로 그려지곤 했는데, 당연하게도 왜곡된 시선을 받았다. 2006년 터키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의 눈으로 이스탄불을 그려냈다. 그는 부유한 명문가 출신으로 아르누보 스타일의 빌딩이 많은 니샨타쉬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그들 대가족이 사는 곳이 ‘파묵 아파트’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부터 <순수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의 이스탄불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 장소들을 순례하면 이스탄불 시민들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순수 박물관>에서 가상으로 그려졌던 박물관이 추크르주마 골목에 실제 문을 열어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주인공 퓌순의 옷, 액세서리, 담배꽁초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1970~90년대 이스탄불 시민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실크 로드의 종합 전시장이기도 했던 그랑 바자르 등의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항상 차를 권한다. 그렇게 서로의 몸과 마음을 녹인 뒤에 거래를 만들어가는 게 이곳 사람들의 전통이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1544년에 세계 최초의 카페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지금도 특유의 카페 문화가 남아 있다. 터키식 커피는 긴 손잡이를 가진 작은 주전자인 ‘체즈베’ 안에 곱게 간 원두, 설탕, 향신료, 물을 넣고 뜨거운 모래 위에 올려 끓인다. 커피 가루가 입에 걸려 텁텁한 느낌이지만, 독특한 제조 방식은 꽤 재미있다. 커피잔에 남아 있는 가루 모양으로 점을 치기도 한다. 로쿰, 바클라바 등 ‘터키시 딜라이트’라 불리는 달콤한 디저트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배경이 되는 시르케지 역.

 

유서 깊은 역사 도시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다
이스탄불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어두침침하고 구태의연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는 그런 덮개를 젖혀버리려는 예술적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행사가 이스탄불 비엔날레다. 오는 2019년에 16회 행사가 열리며, 베네치아, 상파울루, 휘트니 등에 견주는 미술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디자인 비엔날레를 시작해, 상업 미술 분야에서도 이 도시가 가진 잠재력을 알려나가고자 한다. 최근에는 ‘행성을 디자인하다(Designing the Planet)’ 등의 주제를 내세워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에 관심으로 기울이고 있다.
현재 이스탄불은 흑해 연안 아르나부트쾨이 지역에 인천국제공항 3배 크기의 신공항을 건설하고 있다. 올해 10월 29일 1단계 개항만으로 국제선 여객 수 연간 9000만 명을 수용 가능해, 두바이, 홍콩, 인천을 넘어서는 규모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2035년 완공 후에는 연간 2억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허브 공항이 목표다. 로봇이 안내하고 실시간으로 짐 위치를 확인하는 인공지능 시설까지 더해 이스탄불의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을 태세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컨설팅하고 있어 유라시아 대륙 양쪽에서 허브 공항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이스탄불에 이르렀던 실크 로드가 이제 하늘 위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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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