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축구, 도서관 그리고 지구 정반대 편의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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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발아래 지구를 똑바로 뚫고 나가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나온다. 흙탕물투성이의 거대한 강 옆에 서로 다른 대륙에서 온 이방인들이 모여 놀라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탱고, 누군가는 축구, 누군가는 문학의 도시라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누구에게도 온전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미로의 도시다. 

글_이명석 문화비평가

 


 

 

“이곳의 공기는 어찌 이리 좋을까?” 아메리카 대륙의 동남쪽에서 라플라타강의 하류를 찾은 스페인의 탐험가들은 말했다. 그리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가 태어났고 스페인의 식민 도시로 커나갔다. 

 

보카, 탱고와 스포츠의 동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동쪽의 보카 지역은 옛 항구가 있던 곳으로,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조로 칠해진 카미니토 거리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인 ‘탱고’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탱고는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항구 노동자들이 거리의 여성들과 어울리며 만들어낸 춤과 음악이었다. 1920~30년대 카를로스 가르델과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이 등장하며 그 수준을 높여갔는데,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출 때 나오는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가 바로 가르델의 명곡이다. 지금도 카미니토 거리를 비롯해 도시 곳곳에서 탱고 댄서들을 만날 수 있다. 1912년에 문을 연 ‘콘피테리아 이데알’ 등 탱고를 배울 수 있는 여러 공간 역시 흥미로운 공연과 강습으로 탱고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표하는 문화인 탱고를 탄생시킨 지역, 보카 

 

보카는 탱고의 거리이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스포츠 구역이기도 하다. 디에고 마라도나, 카를로스 테베스 등 세계적인 슈퍼스타를 배출한 축구팀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인 ‘라 봄보네라’가 이곳에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탱고를 출 때는 그 열정을 애수 섞인 감정으로 살짝 억누른다. 하지만 축구장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거리는 보카를 상징하는 청색과 금색의 줄무늬로 넘실대고, 골이 터질 때마다 환호성이 폭죽처럼 터진다. 홈 팀의 경기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으면 구장 내의 박물관(Museo de la Pasion Boquense)에서 축구 열기를 체험하는 방법도 있다.

몬세라트 지구의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이 도시의 옛 영광을 보여주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물들이 등장한다. 길거리 음악인 탱고의 반대편인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도 이 도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해왔다. 그 본거지가 바로 콜론 극장이다.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라 봄보네라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공동묘지와 서점

북부의 레콜레타 지역은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1870년대 황열병과 콜레라가 번질 때 부유층이 모기 같은 해충을 피해 이쪽의 높은 지대로 옮겨왔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유럽 스타일의 저택과 공공 건축물을 열정적으로 지어 오늘날 이 도시의 건축학적 매력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공헌했다. 세계 여러 도시가 공원보다 멋진 묘지들을 가지고 있지만, 레콜레타 공동묘지는 그중에서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한다.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일 것이다” 레콜레타 공동묘지에서 북서쪽으로 가면 여러 박물관 사이로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이 나온다. 그 앞에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노인의 조각상이 있다. <바벨의 도서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등 놀라운 상상력의 작품으로 세계 문학인은 물론 여러 장르 예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다. 젊은 시절 사서였던 그는 문학적 명성을 얻은 뒤에 국립도서관의 관장이 된다.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낭독 비서를 고용해 책을 읽고 구술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카페 토르토니, 레스토랑 엘 트로페손, 극장 콜리세요, 호텔 도라 등 그가 즐겨가던 명소를 찾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문학적 향취를 즐기는 팬들도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세계에서 서점이 가장 밀집한 도시라고 하는데,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엘 아테네오’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힌다.

아르헨티나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오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통화 가치의 하락을 이용해 찾아온 외국 여행자들은 이 도시의 문화유산이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시민의 자존심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들은 슬픔을 인내하는 음악, 고통을 반추하는 문학, 열정을 모아내는 스포츠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최고 수준의 것을. 그래서 많은 이는 이 도시가 언젠가 지구 반대편의 중심으로 다시 우뚝 설 것이라 믿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광도시 중 한 곳인 푸에르토 마데로(Puerto Mad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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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