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북방정책의 마침표, 남북교역과 남북한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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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4월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루었다새 국면을 맞은 남북관계에 대비하려면 2016년 개성공단 폐쇄를 끝으로 완전히 단절된 남북교역관계 전반의 이해가 필요하다.

 

 

_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4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통일대교도 분주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통상정책의 패러다임에 크고 작은 변화가 보인다. · FTA 개정 협상의 원칙적 합의를 시작으로 국내 통상 역량 강화를 위한 신통상질서전략실이 신설되어 향후 통상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예정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이하 실무진, 전문가 등의 토론과 검토를 거쳐 마련된 신통상전략도 발표되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신북방정책의 핵심은 한·EAEU FTA 타결과 그에 힘입은 선박, 항만, 항로 개발, 에너지 협력을 기반으로 한 북극항로 협력 강화다. 북한은 바로 이 신북방정책로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남북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남북경제관계의 성질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신북방정책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신북방정책의 마침표를 남북이 함께 찍을 수 있는 것이다.

 

 

 

남북교역의 역사와 국제법상 쟁점

 

남북경제협력은 크게 비상업적인 측면에서의 대북지원과 상업적인 관점에서의 민간 남북경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동안은 식량이나 비료, 의약품 등을 골자로 한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이 주를 이뤄왔다. 그러므로 남북경협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남에서 북으로 물자를 보내는 방식의 일방적인 교역형태를 떠올리기 쉬운 것이 사실이나, 2000년 국민의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 추진된 개성공단 사업을 통해 직접투자와 위탁가공 교역의 형태를 띤 상업적 민간 경협으로 그 스펙트럼이 크게 확대되었다.

 

사실 남북한 간 교역의 역사는 1945년 즈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광복 직후부터 한국전쟁 발발까지 바터(barter)방식의 물물교역과 밀무역 형태로 행해졌다. 일례로, 1947 7월에 남한에서 북한으로의 해로를 통해 구피(狗皮) 3,000매를 반출하고 펄프를 반입해왔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시기 육로를 통해 전라북도를 소관도로 북한에서 조기 600관을 들여왔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전쟁으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남북교역은 1970년대 초 남북 조절위원회에서 협의를 시작해 1984~1985년 다섯 차례에 걸친 남북 경제회담을 통해 체계화되었고, 1988 7 7일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으로 합법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당시 선언을 통해 남북 간 교역을민족 내부교역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하였는데, 이는 우리 헌법 제3조에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이의 교역은 국가와 국가 간의 교역이 아니므로 수출이나 수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반출, 반입이라고 부르고 원산지가 북한인 물품에 대해서는 관세도 부과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국내법상 통상정책 차원에서의 조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WTO 체제에서는 최혜국대우(Most Favoured Nation Treatment, MFN)원칙과 관련해 종종 국제법과 상충하는 문제를 발생시키곤 한다. 남북한은 주권국가를 회원국의 자격요건으로 하는 국제연합(UN) 1991 9 18일 동시 가입해 국제법상 각각 독립국으로 상호 인정되고 있어 우리와 교역하는 기타 WTO 회원국들은 동종상품 교역에 한해 북한과 마찬가지의 무관세 대우 등의 특혜를 요구할 법적 타당성을 갖기 때문이다.

 


  

 

남북한 FTA 이니셔티브 1.0 & 2.0

 

남북한 교역과 관련한 경제, 정치, 외교, 국제법적 의미를 원시안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남북한 FTA의 이니셔티브를 준비, 제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때는 2007 5월로 7년 만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약 5개월여 앞둔 시기였다. 남북한 FTA를 통해 상기 MFN과 관련한 논란을 해소하고, 북한의 무역체계를 선진화시키는 동시에 북한에서 통관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한에 무관세 우회 수출되던 중국산 제품에 대한 대응까지 고려한 계획이었다. 지정학적, 전략적 고려를 두루 거친 이니셔티브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화는커녕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과 같은 기존 남북경협까지 그 맥이 모두 끊어져 버렸지만, 2018년 남북관계는 2007년의 그것과는 성격이 분명 다르다. 그 사이 북한에는 신세대 김정은 위원장이 신()지도자로 추대되었고, 한국도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섰다.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인물이든 아니면 정권의 재창출을 통한 기존의 인물이던 어쨌든 6자회담 당사국 모두는 새로운 정치적 환경에 놓여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및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 등 양측 간 경협사업이 본격 추진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FTA 이니셔티브 2.0이 추진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남북통일에 대한 고민의 관점에서 보면 통일로 가는 길에 대해 과거의 진부하고 고전적인 방법보다는 이 같은 새로운 시도와 접근이 바로 이 신시대에 더 어울리는 옷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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