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원년(元年) 1998년, 자유무역 20년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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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2000년대 초까지 WTO 회원국이면서도 FTA를 체결하지 않았던 한국이 FTA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긴 시간이었노라 폄하하기엔 그 기간 자유무역을 통해 우리가 이뤄낸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자유무역 20주년을 기념하고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글_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2003년 2월 15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서명했다.


1998년 겨울,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으로 열린 문민정부는 신경제 5♡ 계획,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국내 경제정책을 추진함과 동시에 GATT 우루과이라운드(Uruguay Round, UR) 타결, 세계화 표방 등 대외경제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과감히 선보였다.
특히, 이 시기 GATT·WTO 다자통상체제를 발판삼아 수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UR 협상 과정에서 국제무역전공의 우리 경제학자들이 정부 자문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주요 대학에 정부 주도로 국제대학원을 설치해 국제통상전공 등 국제전문인력을 양성해낸 것 등은 되돌아보면 우리 통상정책의 백년지계였다.
하지만 문민정부의 말로는 ‘유독 추웠던 겨울’로 기억된다. 1997년 말의 이른바 ‘IMF 외환위기’ 탓이다. ‘한국 경제가 맞이한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기’로 묘사되는 당시의 시련을 통해 우리 경제는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 자본, 금융, 환율, 외환 제도에서 큰 개혁이 있었고 통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GATT·WTO 다자체제 외에 세계의 흐름에 맞춰 FTA 복수체제를 함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구제 금융의 조속한 상환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역흑자를 확대해 외화보유액을 늘리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결국 차기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1998년 11월 당시 고건 국무총리 주재 대외경제조정위원회의에서 FTA 정책 추진을 공식 의결하고, 그중에서도 한·칠레 FTA를 우선 협상키로 했다. 그 이후는 우리가 모두 아는 바로 그 이야기다. 칠레와의 FTA는 2004년 발효되었지만, FTA 원년은 결국 1998년이다. 우리 입장에선 IMF라는 위기 속에 FTA라는 기회를 찾아냈던 매우 의미 있는 해가 아닐 수 없다.

자유무역에 힘을 모으다
우리 FTA 정책의 지난 20년을 회상하며 정부 조직상 통상협상의 전담부처 변화를 짚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통상협상의 기본 특성을 고려할 때, 바로 그 주체가 통상협상의 중심이 되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FTA 정책의 초석을 다지던 1998년 당시는 외교통상부와 그 산하조직인 통상교섭본부가 전담부처였다. 통상교섭본부는 농림부 등 국내 통상 관련 부처들 간 의견을 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대표 역할을 수행했다. 통상교섭본부는 외교통상부 산하였지만, 본부장은 장관급으로 공식 영문 직명은 ‘Minister for Trade’였다. 다만, 출범 초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내각 각료급의 장관 영문 직명으로 흔히 서구에서 사용되는 ‘Minister of Trade’가 아니어서 상대 협상대표로부터 격이 맞지 않는다는 오해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덕수, 황두연, 김현종, 김종훈, 박태호 본부장으로 이어지는 당시 체제는 우리 자유무역사의 한 페이지를 훌륭히 장식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앞서 언급했던 우리 경제학자와 전문 국제인력의 역할과 활약이 지대했다

새로운 백년지계를 고민해야

최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미·중 통상갈등, WTO와 메가-FTA 위기 등 주요 현안이 산재해 통상부처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지금 FTA 원년 20주년을 추억하지만 향후 20년에 대한 고민도 절실하다. 지난 20년 FTA로 울고 또 웃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FTA 협상에서 우리의 이익을 대변했고 수호했다. 우리는 잘했고 잘할 것이다.

 

각주

① 안덕근, “국제통상의 학문적 발전과 정책적 성과,” 「국제·지역연구」
제26권 제2호(2017년 여름호)
②, ③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협회 70년사: 위대한 여정 무역입국 70년 1946-2016」
④ 홍석빈, “관료의 이념과 제도가 통상협상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한국의 거대경제권 FTA 협상을 중심으로”
⑤ 한국이 칠레를 FTA 첫 상대국으로 결정했던 배경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본지 64호 참고
⑥ 홍병기, “통상정책 키 청와대가 잡아라,” 「중앙SUNDAY」 (2018.3.11.) 현재도 영문 직명은 ‘Minister for Trade’를 사용한다.
⑦ 2013년 외교통상부가 외교부로 개편되고, 통상업무가 신설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며 통상교섭본부는 폐지됐었고, 2017년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조직으로 다시 설치되었다. 차관급의 초대 본부장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냈던 현 김현종 본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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