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 통상압박 데자뷰 한반도 고속도로 내달리던 미국산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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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국제기구(WTO)’도 ‘국가(중국)’도 그저 똑같은 표적일 뿐이다. 재협상, 고율관세, 쿼터 등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 지금 미국의 관심사는 자동차다. ‘무역확장법 232조’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한국도 미국의 압박이 편치 않다. 근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글_박정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통상전략센터 선임연구원

 


2002년 경찰청이 고속도로 순찰차 입찰 방식으로 구입한 포드 토러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의 효능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철강과 알루미늄에서 재미를 봤고, 덕분에 한·미 FTA와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다음은 자동차다. 1980년대 일본, 1990년대 한국과의 자동차 협상, 2010년과 2018년 한·미 FTA 추가 및 개정 협상, 그리고 그사이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최근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까지 미국은 자동차 분야에 있어 백전백승에 가깝다. 현재 진행 중인 232조 조사가 걱정이지만, 새삼 미국의 자동차 통상압박에 대한 20년 전 추억이 떠오르다니 아이러니하다.

미국의 복사하기-붙여넣기 정책
미국의 차(車)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자동차 통상압박은 여기서 기인한다. 먼저 1980년대 일본을 압박해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을 스스로 축소하는 자율수출제한(VER)과 미국 부품 수입을 스스로 확대하는 자율수입확대(VIE)를 얻어냈다.
이와 똑같은 압박 정책을 들고 찾은 곳이 바로 바다 건너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 자동차는 일본 자동차만큼 미국에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문제는 미국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 한국 시장이었다. 미국은 이를 높은 관세(10%)와 세금 제도 때문이라고 봤다. 결국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서한을 보내 시장 개방 확대를 촉구했고, 슈퍼 301조 등 압박 강도를 높였다. 우리는 관세를 8%로 낮추고, 외제 차 신고제도와 각종 세제를 개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앞서 일본 사례의 교훈 덕인지 아니면 애초 일본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목표가 달라서인지 한국으로선 일본에 비하면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미국의 통상압박이 일단 종결됐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570,000 2,500
그런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00년 한국의 대미 수출 자동차는 57만 대였는데 미국의 대(對)한 수출 자동차는 2500대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한국 시장 개방에 목표를 뒀던 미국으로선 위 첫 번째 처방의 약효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같은 해 미국 무역 대표부(USTR)가 발행한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 255쪽은 한국의 8% 관세를 콕 집어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2.5% 관세보다 3배 이상 높다는 불만이었다. 이 내용은 2001년 같은 보고서 277쪽에서도 반복됐다.

 

2002~2003년 한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포드 토러스 모델. 토러스가 국내에서 정식 수입되기 시작한 건 포드코리아가 설립된 1995년이었다

 

미국 소고기 이전에 미국산 소(Taurus)
미국이 8% 관세마저 인하를 요구하자 당시 우리 정부가 낸 묘안이 눈길을 끈다. 바로 ‘상징성’이다. 우선 미국의 불만이 고조되던 2000년 여름 당시 산업자원부는 외제 차 수입장벽 해소 차원에서 최초로 조달청을 통한 수입차 구매의 공식 입찰방식으로 의전차량을 구입했다. 당시 미국에서 ‘대통령의 차’로 알려졌던 포드의 링컨LS(시가 5700만 원, 3000cc급)가 선정됐는데 낙찰가는 단돈 1원이었다. 한국 시장의 상징성 확보를 위한 포드의 통 큰 결정도 주목할 만하나 이듬해 같은 차종을 통상교섭본부가 5750만 원에 또 구입했으니 우리 정부의 솔선수범도 대단했다.
이후 정부는 국민의 외제 차 구매를 독려했고 2002년엔 경찰청이 나서서 고속도로 순찰차 입찰을 시행, 포드 토러스(2003년 SEL 모델) 50대를 구입했다. 교통위반 차량을 단속하거나 경호의전용의 2967cc급 대형세단이었는데 대당 2500만 원(시가 3910만 원)에 납품받았다. 3년 또는 최대 10만km 무상보증수리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스마트컨슈머의 면모도 뽐냈다. 이듬해에도 같은 모델이 재선정돼 50대가 추가로 들어왔다.④  미국의 자동차 몽니를 슬기롭게 대처했던 재미있는 일화다.
참고로, 미국산 순찰차에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호주 고속도로엔 우리 스팅어(Stinger) 모델 순찰차가 달리고 있다.

 

각주

① 현 산업통상자원부
② 공개입찰에서 함께 경쟁하던 차종과 가격은 벤츠E280(5687만 원), BMW728(4343만 원), 다임러크라이슬러300 M3.5(3800만 원)이다.
③1985년 탄생한 포드 토러스는 이미 미국 내에선 최다판매 차였다. V6 3.0리터 듀라텍엔진에 최대토크 27.7kgm/4500rpm. 최고출력 203마력에 최고시속은 210km다.
④ 공개입찰에서 함께 경쟁하던 차종은 다임러크라이슬러 세브링(2736cc)과 GM사브 9-5(1985c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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